작년 12월, 홍대입구역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골목의 A가게. 계약 해지서 뒷면에 볼펜으로 적힌 메모가 있었다. "에어컨 설치비 1,200만 원, 반납 시 분해비 380만 원." 이 메모를 본 적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2023년 홍대 상권이 갈렸다.
## 유동인구가 곧 매출이라는 착각
흔히들 홍대 상권을 설명할 때 꺼내는 말이 있다. 유동인구, 접근성, 역세권. 유흥 이용 가이드에서 흔히 다루는 수준의 분석인데, 실제로 계약서를 넘겨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숫자들이 권리금 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작다. 위키백과 마케팅 정의에 따르면 마케팅은 고객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라는데, 문제는 "고객"이 아니라 "계약서"와의 관계를 먼저 맺어야 한다는 거다.
B가게 사장이 권리금 2억 원에 점포를 넘긴 건 2023년 2월이었다. 새 사장은 같은 해 10월 문을 닫았고, 원상복구비와 미납 임대료를 빼면 실질 수령액은 1,800만 원. "2억"이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계산이 있었다.
반면 자리를 옮긴 C사장은 권리금 6천만 원에 '설비 반출 조건'과 '복구 범위 한정 조항'을 계약서에 박아 넣었다. 실질 보전액 약 4천만 원. 숫자는 작아 보이지만 훨씬 단단한 구조였다.
살아남은 업소들의 공통 분모를 꼽으면, "매출 극대화"가 아니라 "계약 리스크 최소화"를 출발점으로 잡은 것이다. 오픈 첫 달부터 원상복구 비용을 별도 계좌에 월 50만 원씩 적립한 D가장이 대표적이다. 24개월이면 1,200만 원. 홍대 골목 상권의 평균 영업 기간을 감안하면 사실상 탈출 자금이었다. 실제로 오래 버틴 사장들은 공통으로, 표면적 상권 인사이트보다 현장 경험을 쌓은 뒤 계약 조건을 설정하는 쪽을 택했다. 당산 쪽 유흥가에서 5년째 자리를 잡은 업주가 "가장 먼저 본 건 리뷰도 메뉴도 아니고 건물주의 세부임대조건이었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 실패가 확실해지는 순간
잘 모르겠으면 이것부터 봐라. 원상복구 범위를 구두 합의만으로 넘긴 경우. 인허가 비용을 권리금에 끼워 넣고 나중에 별도 청구당하는 구조. 마지막으로 "유동인구만 보고 들어간" 판단의 경우.
넘어가기 전에 이것 세 가지를 자문하라. 원상복구 범위가 계약서에 몇 페이지째 명시되어 있는가. 복구 비용의 실질 시세를 비교 업체 세 군데 이상에서 받았는가. 그리고, 이 점포에서 최소 24개월을 버틸 수 있다는 근거가 본인 손 안에 숫자로 존재하는가.